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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유적지

경상남도 함암군 손양원기념관 방문 후기

by 찬양과 기도 2024.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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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찬양과 기도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잘 알려진 손양원 목사님의 기념관을 방문했는데요. 

오늘은 기념관을 함께 둘러보면서며 손양원 목사님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 그리고 믿음의 삶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손양원기념관은 칠원교회 바로 앞에 있습니다.

칠원교회는 1906년 설립된 장로교회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모교회입니다. 2011년 5월 순교자 기념교회로 지정 되었죠. 손양원 목사님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내시며 굳건한 신앙의 기초를 다지셨습니다. 그의 아버지 손종일 장로는 본교회의 초대 집사와 초대 장로를 역임하시면서 신앙의 귀감을 보이셨고, 1919년 칠원지역 만세 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하시다가 1년 동안 옥고를 치르셨고, 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으셨다고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 1995년 8월 15일 국가독립유공자로 선정되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으셨고 애국지사로 선정되어 국가보훈처의 지원을 받아 2015년 9월에 개관하였다고 합니다.

2018년 한국건축가협회에서 건축상 수상을 한 기념관은 손양원 목사의 복원 생가(30㎡)와 전시장, 영상실, 카페, 사무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2018년 한국건축가협회에서 건축상 수상을 한 기념관이라 그런지 외관이 정말 멋지더라구요.

 

기념관은 총 두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2층부터 관람을 시작하게 됩니다.

가장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고난의 길'입니다.

 

 

고난의 길 끝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모습은 기도하는 손양원 목사입니다.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투옥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태양신과 싸운이들

 

 

손양원 목사님이 옥에 갇혔을 때 쓰신 편지들입니다.

 

모진 고통이 있었을텐데.. 어찌 그리 믿음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당시 애양원에 들어가 한센병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평생 헌신하신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유명한 일화 중에 하나로 중환자들만 격리해 놓은 방에 간호사들이 신문지를 깔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환자 중에 한명이 "우리가 짐승이냐?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라고 외치며 간호사 중에 한 명을 목침으로 때려죽이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때에 손양원 목사님은 맨발로 그 방에 들어가 간호사를 죽인 환자에게 다가가 상처를 직접 입으로 빨아 고름을 빼냈습니다. 한센병은 전염병이라 목사님에게도 전염이 될까 크게 걱정하였지만 다행히 전염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 손양원 목사님은 진심으로 아쉬워하시며 "내가 나병에 걸리면 그들과 똑같아질거고 그러면 환자들이 나에게 더 거부감 없이 대할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애양원의 성도들

 

당시 한센병 환자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48년 여순사건때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을 잃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우익단체에서 활동하던 두 아들을 반란군 세력이 반란 당시 기독교라는 사실을 빌미로 두 아들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아들의 장례에서 손목사님이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자신의 아들로 삼겠다는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아래의 두 아들의 장례식 때 올린 감사 기도의 내용입니다.

 

제가 이 시간에 무슨 답사를 하고 무슨 인사를 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서 몇 말씀 드립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도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열 번째, 이렇듯 과분한 축복 누리게 되는 것을 감사합니다.

 

이런 기도가 어떻게 가능할까? ㅠㅠ

 

그리고 목사님은 1950년 6.25전쟁이 터졌을 때 피난을 가라는 성도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양떼들을 두고 갈 수 없다고 하시며 끝까지 애양원을 지키시다가 결국에는 북한국에게 체포되었고, 1950년 9월 28일 총살을 당하며 49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삶은 '믿음'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숭고한 희생과 헌신의 삶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신 다면 꼭 방문하시기를 매우 추천드립니다.

미리 방문신청을 하신다면 해설사님께서 더욱 자세히 실감나게 설명해주십니다.

 

아래의 손양원 목사님의 기념관 홈페이지입니다.

 

http://sonyangwon.org/

 

손양원기념관 - 애국지사손양원목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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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angwon.org

 

기념관 이용안내
■평일(월~토) 09:00~18:00(매주 일요일 휴관)

기념관 주소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덕산4길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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